신천지 동향 및 불법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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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신앙] 적(안티) 보혜사 이만희의 보혜사에 대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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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안티) 보혜사 이만희의 보혜사에 대한 거짓말
[ 이단연구 / 김홍기 ] 신천지와 이만희의 교리 비판 ⑥
3530440195_Kped5shW_493cdfe49528872432fc7ffb6fda20cbe7eee7a8.gif 2015년 09월 01일 (화) 00:06:19 김홍기 목사 3530440195_Z6uViLOS_f9e54ef644ee22e0dce87faeb6ef7a10aebaf7c1.gif yesusarang@shaw.ca 3530440195_YkGI3D2S_16d3140524ea195fca2bdbad393aade849d2ecfa.gif
김홍기 목사 / 캐나다록키침례교회 담임,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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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기 목사
신천지는 2006년 2월 진용식 목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며 수원지법에 제출한 고소장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담았다. “원고 신천지 교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원고 이만희를 ...... 보혜사 ...... 라고 가르친 적이 없으며 이는 초등, 중등, 고등을 막론하고 진용식의 말마따나 핵심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원고 신천지 예수교회의 교역자들에게까지도 마찬가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천지가 대한민국의 법정을 상대로 버젓이 새빨간 거짓말을 한 증거의 기록이다 (참조. www.youtube.com 크리스천NOW 14회). 얼마 후 신천지는 슬금슬금 이 거짓된 고소를 취하해 버렸다.
신천지는 요한계시록을 해설한 이만희의 책 <계시>(1998년 도서출판 신천지 간)의 표지에 다음과 같이 저자의 이름을 기록한다 - “李萬熙 保惠師.” 신천지는 또한 <요한계시록의 실상>(2005년에 출판된 이만희의 요한계시록 해설서)에서도 저자의 이름을 “보혜사 · 이만희”로 표기한다. 이뿐 아니라 <주제별 요약해설>(신천지의 교리 해설서-이후 ‘요해’)에서도 이만희를 ‘육신의 보혜사’ 혹은 ‘보혜사 선생’이라 호칭하며 이만희를 성령의 ‘대리자’로 설명하고, 심지어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있다(요해 III-2, 18).
이런 일련의 행동을 볼 때 이만희는 자칭 ‘보혜사 이만희’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보혜사를 대적하는 적(안티) 보혜사인 것이 분명하다. 성경은 보혜사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 부른다(요 15:26). 즉 성령은 참되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적보혜사 이만희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심히 거짓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신약의 저자들 중 오직 사도 요한만이 성령을 지칭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요 14:16, 26; 15:26; 16:7). 요한은 또한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 이 말을 사용한다(요일 2:1-한글 성경은 ‘대언자’로 번역). 사전을 보면 보혜사는 ‘옆에서 돕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 혹은 ‘우리의 죄를 위한 변호자, 중보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어 성경들은 ‘파라클레토스’를 “도와주는 자(helper), 위로자(comforter), 조언자(counselor), 대언자(advocate)” 등으로 각각 번역을 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이처럼 ‘파라클레토스’를 성령(‘보혜사’로 번역)과 그리스도(‘대언자’로 번역)를 지칭할 때에만 사용한 반면, 이만희는 자신을 지칭할 때 함부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 “보혜사의 영이 임한 사람도 보혜사가 된다(사복음서, 343). 이와 같은 이만희 자신의 진술에 비추어 볼 때 “원고 신천지 교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원고 이만희를 ...... 보혜사 ...... 라고 가르친 적이 없으며”라는 신천지의 주장은 얼마나 뻔뻔스러운 거짓말인가!
이만희가 자신을 보혜사로 추켜세우는 논리는 그의 어리석고 간교한 속성을 잘 보여준다. “물이 들어 있는 병은 물병이 되고 술이 들어 있는 병은 술병이 되듯이, 보혜사의 영이 임한 사람도 보혜사가 된다”(사복, 343). 참으로 어리석은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물이 들어 있는 병이 물병이 되었다면, 보혜사의 영이 임한 사람은 보혜사의 영의 ‘그릇’이 되어야지 어찌 보혜사가 된다는 말인가? 이는 초등학생들도 파악할 수 있는 논리적 오류가 아닌가? 이처럼 일견 논리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비논리적인 수법으로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은, 이만희의 글을 자세히 살펴볼 때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상투적인 수법이다.
게다가 “보혜사의 영”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만희가 여기서 말하는 ‘보혜사’는 성령을 뜻하는 것임을 이 용어가 쓰여진 문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보혜사의 영이 임한 사람도 보혜사가 된다. 그렇지만 대언자인 목자가 진리의 성령 그 자체라는 말은 아니다”(사복음서, 343). 여기서 “대언자인 목자”는 이만희 자신이다. 따라서 이만희가 여기서 말하는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을 지칭한다. 따라서 “보혜사의 영”이란 말을 풀어 쓰면 ‘성령의 영’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성령의 영’이란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성령의 영’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이만희가 사용하는 ‘보혜사의 영,’ 달리 말하면 ‘성령의 영’이라는 용어는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터무니없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보혜사는 영도 있고(요 15:26) 육신도 있다(요일 2:1 ‘대언자’ 하단 주 참고), 육으로는 ‘보혜사 선생’ 곧 약속의 목자를 칭한다”(요해 III-2, 18). 즉 성령은 ‘영의 보혜사’이고, 자신(약속의 목자)은 ‘육의 보혜사’라는 주장을 펼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도 없는 ‘육의 보혜사’라는 개념을 만들려고 무리를 하다 보니 또 이단 교리를 창안해 낸 것이다. 방금 앞서 인용한 주장(요해 III-2, 18)에서 신천지는 “보혜사는 ...... 육신도 있다” 라고 적은 후 요일 2:1을 그 근거로 제시하는데, 요일 2:1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신천지는 이어서 “육으로는 ‘보혜사 선생’ 곧 약속의 목자를 칭한다”라고 덧붙인다. 즉 ‘영의 보혜사’는 성령이시고, ‘육의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요일 2:1) 그가 바로 ‘보혜사 선생’ 곧 ‘약속의 목자’인 이만희라는 것이다. ‘육의 보혜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한 후, 어리석기 짝이 없게도, 그가 바로 이만희라고 말하다니!
그런데 이만희는 왜 이토록 ‘육의 보혜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보혜사 성령의 영광과 권위와 지위를 탐내기 때문이다. 즉 보혜사 성령의 영광과 권위와 지위를 찬탈하여 자기의 소유로 삼고(관념적인 뜻에서), 자신의 말에 미혹된 사람들을 조종하는 일에 활용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이만희의 이런 악한 의도는 그의 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그의 글에서 우리는 이러한 의도를 분명히 볼 수 있다. “보혜사 성령이 수많은 목자나 성도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대화한다면, 여기저기에서 거짓 영의 역사도 성령의 사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 진리의 성령도 한 사람을 나팔로 삼아 예수님의 말씀을 대언하신다”(사복음서, 342-3).
그런데 이 말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사도 요한의 가르침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요한은 성령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성도 안에 영원히 내주하실 것을 가르친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7). 사도는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모든 성도를 친히 가르치실 것을 증언한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요일 2:27).
성령의 사역을 독점하려는 이만희의 악한 탐심은 다음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만희는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 나와 있는 성령의 사역에 관한 말씀을 엉뚱하게도 이렇게 자기본위로 적용한다. “요한계시록이 밝히 해석되는 것은 곧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셨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시는 때는 요한계시록이 성취되는 때임을 알 수 있다”(사복, 342). 이 말은 성령이 오순절이 아닌 이만희 시대에 오셨다는 말로써, 성령의 역사를 왜곡하고 독점하려는 말이다. 또한 이만희만이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는 말도 성령의 역사를 왜곡하고 독점하려는 말이다. 이로 볼 때 보혜사를 자처하는 이만희는 참된 보혜사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를 심히 훼방하고 대적하는 적(안티)보혜사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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