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동향 및 불법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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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신앙]이만희 씨는 계시록 15장의 무게중심을 아는가

마스터 0 649
이만희 씨는 계시록 15장의 무게중심을 아는가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30
3530440195_xRQyH0fT_8780aaf0f582a23cc4397c15ae1323254391abc1.gif 2009년 03월 26일 (목) 08:03:21 장운철 기자 3530440195_Zqpw1yDF_18c6aaa60b305084b506b5416214e953dabe8bdf.gif kofkings@amennews.com 3530440195_v0HE2JMK_452cabd06b0ba8f8c3f2668e23430d396aa0d6af.gif

이만희 씨는 삼각형의 무게중심 구하는 법을 아는가?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수학 문제다. 삼각형 세 각의 이등분선이 동시에 만나는 점이 바로 그곳이다. 삼각형 자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그 자의 무게중심을 구하고 그곳에 손가락을 댄 후 그 삼각형 자를 들어 올리면 신비스럽게도 삼각형 자가 손가락에 쓰러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삼각형 자의 전체 무게의 중심점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무게중심이 있을까? 성경책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는 중심 말고 성경이 드러내고자 하는 핵심 말이다. 무게중심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에 ‘+알파’가 붙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상이나 특별한 존재의 인간 등이 전혀 필요없다.
성경의 무게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요한계시록의 무게중심은 무엇일까? 동일하다. 예수 그리스도다. 그럼 계 15장의 무게중심은 무엇일까? 다르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다. 따라서 성경 어느 곳을 해석할 때도 그 중심은 통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이만희 씨도 동의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씨의 책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보면 무게중심이 비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계 15장의 그의 해설 장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삼각형의 어느 한 쪽 각을 제대로 이등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각형 자를 들어 올리면 자꾸 한쪽 편으로 기울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계 15장에 나타난 이 이 씨의 비뚤어진 무게중심은 무엇인가? ‘유리바다’와 ‘증거장막성전’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유리바다=하나님의 말씀’?
이 씨는 계 15:2의 ‘유리 바다’를 요한계시록 15장의 무게중심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 씨는 15장을 5단락으로 나누어 해설을 했다(1절, 2절, 3절, 4절, 5-8절). 이 씨는 2절에서 언급된 유리바다를 매 단락 해설할 때마다 언급했다. 그리고 그 단락의 내용과 연관시키려고 노력했다. 그가 중요한 중심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이 씨는 ‘유리바다=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해설이 옳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구약의 물두멍과 유리바다를 연결시키려고 했다. 살펴보자.
“모세가 만든 물두멍은 수족을 씻어 깨끗케 하는 도구였으나 영계 하나님의 유리바다는 우리 속사람을 씻어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이 씨의 책, p. 324).
물두멍은 구약의 제사 때 필요한 도구다. 그럼 요한이 환상 중에 본 하늘의 유리바다도 그런 도구란 말인가? 이 질문에 ‘yes’라는 답이 나와야 이 씨의 주장대로 유리바다의 역할을 ‘속사람을 씻어 정결케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한 번 더 양보해서 이 씨의 주장이 맞다고 해보자. 그 다음 정결케 하는 것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연결점도 없다. ‘세례, 회개, 성령충만, 찬양, 기도 등’ 많은 요소들도 정결케 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 말씀도 해당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는가’ 이다. 
‘그냥 그렇다’는 식의 이 씨의 해설은 계속된다. 이 씨는 계 15:2의 ‘거문고’를 ‘성경책’이라고 해설했다. 그는 ‘이미 계 5:8-9, 14:2-3에서 밝혔다’고 덧붙였는데 그곳에 기록된 그의 해설을 들춰봐도 ‘그냥 그렇다’는 식이다.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의 눈엔 그렇게 보인다. 
계 15:2의 유리바다는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유리바다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의 상징이다. 유리바다는 이미 계 4장에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보좌 장면을 언급하는 중에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 보좌의 어떠함을 기록하는 가운데 유리바다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니 문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르면 유리바다는 하나님의 보좌의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한 의미를 가진다. 당연하지 않은가? 같은 맥락에서 ‘거문고’도 해석하는 게 옳다.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기 위한 것이 거문고 악기의 역할이다(참고 대상 16:42). 이미 계 5:8의 4생물과 24장로들도 그러한 의미로 사용했으며, 시온산의 14만4천명도 마찬가지다(계 14:2).
그런데 계 4:6절에서는 ‘수정 같이 맑은 유리바다’로 나오는데 계 15:2에서는 ‘불이 섞인 유리바다’로 나타난다. 왜 그럴까? 곧 쏟아지게 될 7대접의 심판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권성수, p.319). 
사실 계 15:3-4의 무게중심은 ‘찬양’이라 보는 게 합당하다. 바로 ‘그 분’을 찬양하는 장면이다. 본문은 찬양의 제목이 무엇이며, 누구를 찬양해야 하는 것이며, 어떤 태도로 찬양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계 15장 전체의 무게중심이 되기도 한다.
찬양의 제목이 바로 ‘모세의 노래’ 즉 우리의 구원자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이다. 이만희 씨는 ‘모세의 노래=구약성경의 말씀’, ‘어린양의 노래=신약성경의 말씀’이라는 식으로 무슨 도표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이 씨의 눈에는 ‘전능하신 이시여’라는 찬양의 폭발음이 들이지 않는가? 그것이 계 15장 무게중심 중의 핵심이지 않겠는가?
    ▲ 이만희 씨(pd수첩 촬영)
증거장막성전이 이 땅에 있다고?

이만희 씨가 계 15장에서 무게중심 삼고 싶은 또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증거장막성전’이다. ‘유리바다’보다 더 많이 사용된 용어다. 
이 씨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계 15장에 등장하는 ‘증거장막성전’이 바로 이 땅에 존재하는 자신들의 단체를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도 아닌 자신들만이 유일한 정통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씨의 주장이다. 해괴한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이긴 자를 중심으로 세워지는 증거장막 성전은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인 계시록 성취 때에 창조되므로 이전에 세워진 여느 성전과는 달리 영원히 이 땅에 존재한다”(이 씨의 책, p.329).
“본장에서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증거장막 성전은 약 이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미리 이름까지 지어 놓으신 약속한 성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증거장막 성전은 성경에 약속하지 않은 지구촌 모든 교회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참 정통’이다”(이 씨의 책, p.33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떠난 유대교도, 가톨릭도, 개신교도 더 이상 자칭 정통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증거장막 성전만이 유일한 정통임을 깨달아야 한다”(이 씨의 책, p.330).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과 같은 큰 교단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여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께 속한 증거장막 성전’을 이단이라 하는 사람은 성경의 ‘성’자도 모르는 자요 계시록의 ‘계’자도 모드는 자이다. 아니면 교권을 앞세우며 예수님을 찌르거나 사도들을 죽인 귀신들린 자들일 것이다”(이 씨의 책, p. 331).
위의 4가지 인용문 중 먼저 두 번째 것부터 살펴보자. ‘증거장막 성전’이라는 이름은 약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직접 지어 주셨다고 했다. 그런가? 계 15장에 그 용어가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계 15장을 해설하면서 한 말이니 당연하다.
이만희 씨의 주장이 맞다고 해보자. 계 15장의 그 단체 명이 약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미리 직접 지어주신 것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성경을 좀더 큰 눈을 뜨고 다시 한 번 읽어보자.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계 15:5).
이 씨의 말대로 예수님이 직접 지어주신 이름은 ‘증거장막의 성전’이다. 그러나 지금 이 씨가 주장하고 있는 이름은 ‘증거장막 성전’이다. 같은가? 아니다. ‘의’자가 빠졌다. 예수님이 직접 지어주신 이름 중 한 글자가 빠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 씨의 주장대로 하면 이 씨 자신의 단체는 약 이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의 단체가 되지 못한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위의 인용문 중 3-4번째 것을 다시 보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과 같은 큰 교단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단이라 규정했다고 이 씨는 불쾌해 했다. 이만희 씨가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공식 규정된 것은 사실이다. 그 규정된 이유가 어떠한지 이 씨는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는가? 위에 언급한 교단에서 이 씨 자신을 이단으로 규정할 때 큰 교단에 소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가? 
주요 교단의 이만희 씨 이단 규정 공식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시 한 번 잘 살펴보기를 바란다. 무엇 때문에 이단이라고 했는지 말이다. 
“이만희 씨는 장막성전(당시 교주 유재열) 계열로서, 그가 가르치고 있는 계시론, 신론,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등 대부분의 교리는 도저히 기독교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이단이다”(예장 통합 제 80회 총회, 1995년).
“그들은 성경을 단순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자들로서 전통 성경해석 원리를 근본적으로 무시한 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을 비유적 개념으로만 풀어 나아가려고 하는 매우 무지한 소치를 취하고 있는 자들이다. 등등”(예장 합동 제 80회 총회, 1995년)
큰 교단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단으로 몰렸다는 식의 생각은 피해망상적 생각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단으로 규정받은 것이다. 
다시 위의 인용문 중 첫 번째 것을 살펴보자. 이 씨는 성경 본문의 ‘증거장막 성전’을 이 땅에 있는 자신들의 단체와 연결시켰다. 과연 그런가? 역시 성경을 제대로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계 15:1).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계 15:5).
계 15장은 요한이 하늘의 무엇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15:5도 마찬가지다. 이는 처음이 아니다. 요한은 수시로 그러한 하늘 장면을 보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계 12:1, 12:3 등). 15:5에도 성경은 분명히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이다. 증거장막의 성전이 하늘에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요한은 그것을 본 것이다. 곧 쏟아지게 될 7대접의 재앙이 시작되기 전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그 재앙을 앞두고 2-4절까지는 유리바다에서의 승리의 노래,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찬양이 막간을 통해서 우렁차게 흘러나오고 있는 장면이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자. ‘증거장막의 성전’이 하늘에 있다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왜 이 땅에 있다고 또 그것이 자신들의 단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가?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그 의미를 모르고 성경을 단순하게 봐서 그렇다고 말하겠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계 15:5 전후 문맥의 주해를 더 해 줄 수도 있다. 성경이 스스로 무엇이라고 언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뜬 후, 계 15장을 ‘쭉-’ 읽어보자. 그리고 ‘성경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무게중심이 어디 있다고 여겨지는가?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등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유리바다’나 ‘증거장막 성전’ 등과 같은 것이 보이는가 아니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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