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동향 및 불법사례

신천지 동향 및 불법사례


[교회와신앙]이만희 씨가 찾아낸 '7대접'의 숨은 의미

마스터 0 600
이만희 씨가 찾아낸 '7대접'의 숨은 의미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31
3530440195_CIrMLcOi_270ae5fec38aa9392e1f70285210df611ab02216.gif 2009년 04월 28일 (화) 21:16:18 장운철 기자 3530440195_RGeXTM0v_cbcfdcfe4164d3cf661cdf4c4de6fba137bbcc6e.gif kofkings@amennews.com 3530440195_qoevdBP8_cb8304963f62685a17cb0dd4cc2da5e242fbb30a.gif

놀부는 욕심이 많다. 가진 것이 많았지만 더욱 가지려고 한다. 심지어 가난한 동생 흥부의 것도 탐을 낸다. 결국 착한 동생 흥부는 행복하게 되고 악한 놀부는 큰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흥부전의 내용이다. 

흥부전은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 ‘착함’을 권장하고 ‘악함’에 징계를 내린다는 고전 소설의 대표적인 초점이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콩쥐팥쥐전, 장화홍련전 등도 여기에 속한다. 

어떠한 글을 읽든(영화를 보더라도) 그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 주제를 따라 읽어야 한다. 그 글의 한 부분만을 읽더라도 마찬가지다. 흥부가 박을 켤 때, 놀부가 박을 켤 때 심지어 제비의 다리가 부러질 때도 각각의 이야기들은 흥부전이 말하고자 하는 ‘권선징악’의 주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것을 따라 읽어가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만희 씨의 책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읽다보면 이 씨가 종종 각론 부분에서 엉뚱한 주제 접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흥부가 박을 켤 때의 이야기에서 ‘박의 색깔’이나 ‘박의 크기’ 등 엉뚱한 내용을 그 단락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과 같다. 심지어 ‘그 때의 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 흥부전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상당히 동떨어진 접근을 하고 있는 것도 발견된다. 그 톱의 의미를 발견한다며 제시한 자료들(난삽하게 제시한 신구약 성경구절들)은 그래서 우습기까지 한다.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먼저 요한계시록 16장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계 16장은 7대접 재앙에 대한 내용이다. 그동안 ‘인 - 나팔 - 대접’ 순으로 재앙이 진행되어 왔다. 이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절정에 이르게 되고 이것이 바벨론의 멸망(18장)과 그리스도의 재림(19장)으로 연결된다. 7인과 7나팔도 하나님의 진노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15:1), 7대접은 하나님의 진노를 마감한다는 의미에서 절정적 진노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 마디로 ‘인 - 나팔 - 대접’의 순으로 진행되는 요한계시록의 이야기(6장-16장)는 ‘하나님의 계획’ 중에서 ‘재앙’이 큰 주제가 된다는 말이다. 

   
▲ 이만희 씨

이제 이만희 씨의 성경해설을 한 번 살펴보자. 그도 그러한 큰 주제 하에 성경을 해설하고 있는지 말이다. 계 16:3에 대한 것이다. 먼저 성경구절이다.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계 16:3). 

이 씨는 이 성경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해설을 하려고 했다. 

“둘째 대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닷물이 죽은 자의 피와 같이 되고 그 가운데 사는 모든 생물이 죽게 된다고 한다. 본문의 바다는 어디이며 왜 피가 되며, 바다 가운데 사는 생물은 무엇인가?”(이 씨의 책, p.340) 

이 씨의 관심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씨는 성경구절, 즉 둘째 대접의 의미보다 ‘소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도 소품에 담겨진 그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잔뜩 힘을 주고 있다. 마치 흥부전에서 ‘톱’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던진 엉뚱한 질문에 답을 내린 것을 보면 더욱 우습다. 그의 답을 들어보자. 

“본문에 기록한 바다는 세상이요(단 7:3, 17) 나아가 용(사단)이 주관하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무리 즉 멸망자들이다(계 17:1, 7, 15). 이 바다 가운데 사는 생물은 짐승에게 속한 장막 성도를 포함한 세상 교인을 말한다(합 1:14)”(이 씨의 책. p.341). 

다시 말해 이만희 씨는 계 16:3의 둘째 대접 본문의 핵심을 ‘바다의 의미’, ‘바다 생물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으로 ‘바다 = 세상’, ‘바다 생물 = 세상 교인’이라고 했다. 과연 둘째 대접 본문이 그러한 의미를 밝히려고 기록된 것일까? 이 씨의 성경해설은 우문우답(愚問愚答)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다. 

요한계시록 16장 1-9절까지의 본문은 말 그대로 ‘자연재해’를 말하고 있다. 그것이 성경본문의 핵심이다. 이는 ‘인 - 나팔 - 대접’으로 이어져 온 재앙의 결정판이기도 한다. 1대접 - 4대접까지의 재앙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대접재앙 -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으니, 사람들이 ‘헌데’로 인해 아주 아파한다(16:2). 
2대접재앙 -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았을 때 ‘죽은 자의 피’처럼 된다(16:3). 
3대접재앙 - 천사가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니, 역시 ‘피’가 된다(16:4). 
4대접재앙 -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으니, 해가 사람들을 직접 태우듯 괴롭히게 된다(16:8-9). 

자연재해는 ‘땅, 바다, 강과 물의 근원, 해’ 등에 걸쳐 폭넓게 발생한다. 이는 계 16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앞선 7나팔 재앙에서도 나타났다. 그때는 1/3이 피해를 입었다. 7나팔 재앙 중 1-4나팔 재앙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대접 재앙과 비교해 보자(계 8:7-13). 


제 1 나팔

불피 우박

땅, 수목, 각종 푸른 풀 1/3 타 버림

출 9:18-26

제 2 나팔

큰 불산

바다

바다 1/3 피, 생물 1/3 죽음

출 7:19-21

제 3 나팔

큰 불별

강/원천

물 1/3 쑥, 다수 죽음

 

제 4 나팔

 

해달별

해달별 1/3 어두워짐

출 10:21-23

 
1/3의 재해가 대접 재앙으로 오면서 전체적인 수준까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5대접 재앙에서부터 언급될 인간체계 전체를 흔드는 심판과 연결해 본다면, 결국 인간의 범죄로 인한 자연의 저주받은 현상이 더욱 극심하게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서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을까?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되는구나!’라며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으라는 것일까? 아니다. 그럼 이만희 씨의 주장대로 어느 특별한 존재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말일까? 더욱더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런 심판의 소식 ‘인 - 나팔 - 대접’을 통해서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고(9:21, 16:9) 동시에 신자들로 하여금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도록” 경성시키는 것(16:15)이 하나님의 의도다(권성수, pp. 218-219). 

성경본문에 대한 이만희 씨의 엉뚱한 접근은 계속된다. 셋째 대접에 대한 부분이다. 먼저 성경구절이다.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다 하더라”(계 16:4-7) 

위 성경구절에 대해 이 씨는 ‘셋째 대접과 피가 된 강과 물 근원’이라는 제목을 달아 해설하려고 했다. 그는 해설을 이끌어가기 위해 역시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무엇이라고 했는가? 

“본문의 강과 물 근원은 어디이며 대적에게 핏물을 먹인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알아보자”(이 씨의 책, p.342). 

이 씨는 계 16: 4-7까지의 본문의 핵심을 ‘강과 물 근원은 어디?’, ‘핏물 먹인다의 의미’가 각각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위 성경본문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런 것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만희 씨는 그에 대한 답으로 ‘물 근원 = 거짓 교리’, ‘핏물 먹인다 = 비진리를 받는다’는 식으로 언급했다. 

흥부의 톱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이만희 씨에게 ‘하나님은 참되고 의로우시다’는 7절의 구절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성경본문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의도대로만 설명을 하려고 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구절의 의미는 빼놓게 되는 꼴이다. 

계 16:5-7은 소위 ‘심판 송영’에 해당된다(David E Aune, pp.891-897).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판이 옳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짧은 찬송인 것이다. 이 구절은 제 3대접과 제 4대접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불만을 토로한 것이 아니라 그 정의로움을 찬양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천사의 노래는 이미 15장 4절에 나타난 ‘모세의 노래’ 즉 ‘어린 양의 노래’와도 그 내용이 유사하다. 

이 씨의 눈에는 왜 이렇게 놀라운 성경구절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계속해서 넷째 대접 본문(계 16:8-9)에서도 ‘해는 무엇인가?’ 등으로 본문을 접근하고 있는 이 씨의 식견에 답답할 뿐이다. 

흥미로운 지적 한 가지만 더 해보자. 계 16:1 본문에 관한 것이다. 먼저 성경구절을 보자.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계 16:1). 

이만희 씨는 ‘큰 음성’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접근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이라고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큰’ 음성이기 때문에 주저없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도 판단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고민은 해 보았어야 했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를 쏟으라”라는 것보다 “너희는 가서 나의 진노를 쏟으라”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말이다. 

‘큰 음성’으로 천사가 말하기도 했다(계 14:7, 9 등). 또한 계 16장에서 ‘물을 차지한 천사’ 등 다른 천사가 말하는(찬양하는) 장면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떠한가? 이런 부분을 고민해 보았는가?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이 씨가 성경 해설을 하기 전에 본문에 대한 고민을 조금만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영화나 연극, 또는 이야기 속에는 항상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엑스트라)을 맡은 이들이 있다. 여러 가지 소품들도 등장한다. 언제나 이야기는 주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조연은 주연을 드러내 준다. 종종 조연이 더 많이 주목 받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조연은 조연이다. 그게 그의 역할이다. 단역도 마찬가지다. 소품은 그 환경 등을 제공해 준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의 주연은 항상 하나님이시다. 바로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쓴 것이 역시 성경이다. 그런데 조연이나 단역도 아닌 소품에 무슨 특별한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한 접근을 풍유적(알레고리식) 방식이라고 한다. 마치 흥부전 이야기 속에서 ‘톱의 의미’, ‘놀부 곰방대의 의미’ 등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도 같다. 

이만희 씨가 그렇다. 그는 ‘비유’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자기중심적으로 해설하려고 하고 있다. 흥부전부터 다시 한 번 차근차근히 읽어보기 바란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