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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성전은 왜 붕괴되었나?

마스터 0 2546

 

전도관에서 크게 조희성이 '영생교'를

이영수가 '에덴성회'를

유인구, 유재열이 김종규의 '호생기도원'을 거쳐 '장막성전'을 차려 각각 갈라져 나옵니다.

 

장막성전의 원래 모태는 김종규를 교주로 하여 1964년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이란 사찰 암자에 있었던 호생기도원으로 

김종규의 환상적 신앙에 젖어 있었던 유재열은 당시 18세의 나이로 호생기도원에서 기성교회를 공격하면서 스가랴 12 : 1을 인용, 

장막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역사한다고 주장 합니다.

 

유재열은 1966년 5월 20일로부터 1,260일이 지난 1969년 1월 1일이 되면

세상은 불바다가 될 것이니 '회개하고 구원의 장막에 모이라. 이 곳만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곳'이며 

14만 4천명이 모일 때 종말이 온다고 외쳐 서울, 인천 수원 등지에서 사람들이 그 한정된 수에 들려고 시간을 다투어 모여 듭니다. 

마지막 날을 대비하기 위하여 가산을 다 팔아 바치고 처음 모인 수는 3백여명으로 그 수가 점차 늘어나 

1970년말 통계에 따르면 약 8백 세대 5,000여명이 장막성전에 입주하여 또 하나의 신앙촌으로 격리 집단을 형성합니다. 

신도는 70% 가량이 여자로 연령은 40대 중년층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학력은 무학 내지 초등학교 졸업 정도이고 

신도의 95%가 기성교회와 전도관에서 이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다른 사이비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추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출처] 서울육백년사:장막성전(이삭교회)

                           

 

                                              

 

 

                                                                                                 

조사를 해보니 

장막성전은 사이비 종교의 정화로 멸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막성전이 무너진 것은 ‘청지기 교육원’이 침노해서도 아니고 ‘사이비 종교 정화’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1975년 9월 유재열씨가 구속된 사건 원인이었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서 스라이브러리를 치시고

뉴스라이브러리 검색창에서 장막성전을 치시면

 

53개의 기사가 뜹니다.

앞의 12개가 장막성전에 대한 당시의 기사 입니다.

그 중 몇 개를 올립니다.

 

자세히 읽어보시면 장막성전이 어떤 곳인지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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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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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씨가 유재열씨를 고소한 사건은 

바구니 공장 사장이었던 두 증인 홍종효씨가 그 재산을 유재열에게 사기 당한 것에 대해 고소 서류 작업을 도와 준 것이었습니다.  

여신도 간음, 강제추행, 사기, 착취 등의 일로 장막성전은 사이비 종교로 규정되고 교주 유재열은 1975. 9. 6에 구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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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계기로 신도들이 장막 성전을 속속 떠났고 여러 사기 피해자도 나타나 장막 성전은 흩어지게 됩니다. 

오평호 씨는 그 다음에 들어갑니다. 그 시끄러운 상황 속으로. 

 

여기에 당시 이단 사이비 척결 운동가였던 고탁명환씨가 장막성전의 빛을 갚아준다는 조건으로 장막성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삭교회 명칭을 바꾸고 유재열씨는 미국으로 떠납니다.

 

이상이 신천지가 이단 사이비 정화운동에 의한 핍박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첫 장막, 장막성전의 와해 사건의 내용 전말 입니다.

 

조사를 해 보니 탁명환씨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비단 장막성전만이 아닌 모든 이단사이비 척결 운동을 하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불의의 죽음에 대하여 당시에 뜻있는 지성인과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했다 합니다.

(http://blog.naver.com/cc365cc/150150183678에 한국 이단사이비사의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는 고 탁명환씨의 저서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20여년간 이단 사이비 단체와 사투를 벌리면서 겪었던 그의 인간적 고뇌와 신앙적 신념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유재열씨의 제자였던 사람들은

각각 책 받아 먹은 자, 계시 받은 자가 되어 

구인회 '천국복음전도회'를  (구인회의 경우 역시 사회적 추문으로 구속, 옥중 사망 합니다. [1]클릭 하세요)

풍일 '실로교회'를 

이만희 씨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을

이만희씨가 ’두 증인‘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홍종효 '증거장막성전‘을

심재권은 '무지개 증거장막성전‘을 

그리고 정창래는 '성남 장막성전‘을 차립니다. 

 

이들은 모두 전도관→ 장막성전을 거쳐 갈라져 나와 

지금도 유재열이 가르쳤던 교리를 그대로 가르치면서 각각 자신이 구원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갈라져 나온 구인회의 경우는 제자 최충일에 의해 신천지보다 더욱 완벽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 들었습니다. 

전도관, 장막성전 출신으로 지금 이만희씨 옆에 남아 있는 인물로는 부인 유*순씨와 신천지 베드로 지파장 지*섭씨가 있습니다.

 

지금의 신천지가 그들과 다른 점은 통일교 강사 출신인 김건남, 김병희 등에 의해 창조 재창조, 시대별 구원자 이론, 노정 순리 등 통일교 교리가 더해진 것과 김풍일의 '실로신학원'에서 착안한 성공적인 신학원 운영에 있었습니다. 

 

시사해야 할 점은 신천지에 있다 나간 사람들 중 열 일곱 이 또 책 받아 먹은 자, 계시 받은 자가 되어 각각의 교단을 창설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Tip 하나  

 

전도관에서 나온 '장막성전'은 살펴보신 바와 같고 

'영생교'를 차린 조희성씨의 경우를 보실까요?

 

 

 

 

                                                                            

 

 

 

또 '에덴 성회'를 차린 이영수씨의 경우를 볼까요? 

 

 

                                                                                                                 [복사]http://blog.naver.com/kankani3/30047261255

1979년 11월 27일 동아일보의 기사일부 발췌--

아래는 기사의 내용.. 한문은 한글로 변환 시켰다. 

 

 

여신도를 간음, 재산까지 뺏어 내기도한 혐의로 구속된 <에덴성회>교주 이영수씨(35)는 박태선 장로가 운영하는 한국예수교 전도관 부흥협회(전도관)의 이탈신도들을 규합, 73년 11월 17일 <한국기독교 에덴성회>를 창립했다.  

창립당시는 50여명의 신도에 보증금40만원 월세5만원을 주고 빈 사무실 한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옛 서울사대 자리에 세운 2층 교회에 본부를 두고 대구 인천 등 18곳에 지부를 둘 정도로 번창했다. 

교적부에 올라있는 신도는 7백여명이나 실제는 4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씨는 교주(일명 총회장)로서 <살아있는 신>으로 행세, 화려한 생활을 했지만 <에덴성회>를 창립하기전까지는 불우한 처지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경북김천시에서 김천중학졸업1개월을 앞두고 서울로 와 자유당중앙당사 대일목재소 사환등으로 떠돌았고 동대문구 창신동에 있는 찬송가집 제작업소 광해당에서 일하기도 했다. 62년 5월 전도관 전도사로 들어가 6년간 활동하다 68년4월 그만두고 69년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유니버샬 톱싱어 레코드사>라는 가요학원을 내는 한편 <꽃처럼 낙엽처럼> <석양길>이란 대중가요를 직접취입, 가수행세도 했다. 

영화배우로 <8도 며느리>에 출연, <영규>역을 맡기도 했으며 70년9월에는 <국제영화>잡지사 기자도 하는등 이때부터 이씨는 천의 얼굴이 되었다.

73년 9월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전도관에 다시 전도사로 복직했다가 일주일만에 제명 당한 뒤 에덴성회를 창립했다. 교주가 된 이씨는 수완을 발휘, 주로 여신도를 통해 교세를 확장해 갔다.

그는 "말세를 구원하는데만 전념하고 성생활은 못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척추신경 마비를 당한 불구자" 라고 선전, 여신도들이 여관등 은밀한 곳에서 만나도 안심토록 했다. 그런 뒤 안찰기도를 해준다면서 추행했고 변태적인 방법으로 농락까지 했다.

이씨는 중3때 운동을 하다 척추를 다쳐 성기능이 약하지만 불구자는 아니라고 수사과정에서 실토했다는것. 

성불구자 행세를 해온 이씨는 <에덴성회>집사인 김모부인(50)모녀와 성가대원 정모양(28) 자매를 농락해 그 여인들은 가정파탄까지 일으켰다. 

교주 이씨를 걸어 고발장을 냈던 김모양(28)은 "에덴성회가 아니면 구원 받을수 없다"는 설교에 직장을 그만두고 애인과도 헤어진 뒤 교회 신축 공사장에 나가 모래등을 날랐던 열성 신도였다.

김양은 교주한테 불려가 여러 번 추행 당했는데 그때마다 "주의 종은 절대 정결하다. 마지막 축복은 교주와의 성관계로 얻을 수 있다"고 꾀었다는 것.

김양은 교회 복도 청소를 하던 중 이씨로부터 추행 당하기도 했는데 이씨는 먹던 사탕을 뱉어주며 "주의 종 손길마다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수사당국의 조사로는 30여명의 여신도가 수모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이런 비행이 탄로나 보복이 있을까 봐 여신도를 협박했고 프로권투 10년 경력의 송동호씨(40.구속)를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가 농락한 여신도를 송씨가 다시 농락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고 마룻바닥을 두드리면서 기도하는 광적인 분위기 속에 미남인 이씨가 나타나 설교하면 여신도는 문론 남신도도 안 빠져 들 수 없다는 신도들의 말이다. 리어카 행상 김도씨(40)는 <살아있는 신> 이씨에게 빠져 6백만원을 헌금하기도 했다.
이씨는 유창한 설교는 문론 사술까지 동원해 6년 동안에 2억여원을 헌금등 명목으로 모았다

사술 중의 하나가 <성화>라고 속여 파는 천연색사진. 지난 9월 부산집회때 사진사를 시켜 이씨 모습을 찍었는데 연기모양만 나오고 이씨 얼굴은 담기지 않았다고 선전했다. 미리 돈을 받고 이런 조작 사진을 만들어낸 사진사는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68년 4월 서울 청량리에서 에덴사진관을 경영한 일이 있는데 이때 경험을 살려 이런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이씨는 박태선장로가 운영하는 전도관의 전도사로 오랫동안 활약했기 때문에 <에덴성회> 의 교리는 

전도관 교리와 비슷한점이 많으나 "박장로는 씨를 뿌리는 감람나무이며 나는 알곡을 거두는 감람나무다. 박장로는 모세의 성령을 받았는데 나는 여호수아의 성령을 받았으며 모세의 사명은 끝났다" 고 설교, 전도관에 도전해 왔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 탁명환)조사에 따르면 전도관 신도들이 계속 이탈, <에덴성회>에 가입하자 양측은 극단적으로 대립했으며 <에덴성회> 창립예배 때부터 전도관 청년 신도들이 몰려와 방해 공작을 한 일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맺은 열매는 악령의 그것이었습니다.

 

전도관의 제자 영생교(조희성), 에덴성회(이영수), 장막성전(유재열)의  말로가 왜 이러한지는 

전도관이 어떠한 곳이었는지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정한 이치대로 스승에게 보고 배운 것이 그것 이었으니까요.

 

그럼 이러한 전도관과 장막 성전을 스승으로 두고 보고 배운 그 제자들이 차린 

천국복음전도회(구인회)실로교회(김풍일), 성남 장막성전(정창래), 무지개 증거장막성전(심재권) 그리고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만희)와 증거장막성전(홍종효)는 어떨까요?

 

 

 

 

                                                      

 

 

 

 

 http://blog.naver.com/cc365cc/150141699834로 가서 신천지보다 10년 먼저 차린 천국복음전도회 구인회의 경우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리하면, 

그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각자가 다 계시를 받았으며 책을 받아 먹었으며 이긴자요 예수님의 영이 임한 이 시대의 구원자라 합니다.

과연 누가 진짜 일까요?

 

 

 

Tip 하나 더 

 

 

자기가 책 받아 먹고 예수님의 영이 임했다는 이 사람들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으면 어떨까요?

나중에 지옥 유황 불못 앞에서나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러한 시도를 이미 오래 전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단 사이비 척결 운동가였던 탁명환씨 였습니다.

그는 아주 소중한 한 장의 사진을 남겼습니다.

한국의 재림 예수님 입니다. 불참하신 분도 있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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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http://blog.naver.com/kankani3/30048107643 [작성자]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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