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탈퇴 수기 (신천지 경험담)

신천지 탈퇴자 수기


<인천 마태> 오빠와 함께 신천지를 차례로 나온 자매 이야기

마스터 0 1662

안녕하세요. 저는 신천지에서 1년정도 생활하다가 나온 21살 조*주입니다. 먼저 저를 위해 또 오빠를 위해 모든 것 다 버리시고 부산까지 내려와 저희를 살리기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 저희를 위해 많은 기도와 도움을 주신 목사님과 교회사람들, 가족들 너무 감사드리고 부산에 내려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 최집사님, 저희가 상담을 받으며 지낼 수 있는 집을 빌려주신 사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항상 친절하시고 상냥하게 대해 주시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며 상담해주신 상담소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참과 거짓을 분별할 기회를 주시고 또 분별하게 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사실 그렇게 안보이시겠지만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모태신앙인입니다. 어릴 때는 엄마 손에 이끌리어 작은 교회를 다녔었습니다. 제가 자라서 제 스스로 신앙을 할 수 있을 때쯤 큰 교회가 싫다는 이유로 작은 개척교회로 옮겨 그곳에서 온 가족이 다함께 신앙을 했습니다. 개척교회이다 보니 또래가 없어 힘들어할 때쯤 목사님의 권유로 교회에서 그곳의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친 적이 있어서 밴드에서 피아노를 맡았고 악기를 만져본 적도 없던 친구들과 함께 배우며 호흡을 맞췄습니다. 밴드는 얼마 못가서 각자의 사정들로 없어졌지만 교회에 오래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제가 오후 4시, 5시까지 연습할 정도로 즐거웠었습니다. 밴드가 없어진 후에도 피아노 반주를 하는 친구와 함께 피아노를 쳤고 제가 신천지로 교회를 옮기기 전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9월에 친하지 않던 친오빠가 갑작스럽게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가 있으니 함께 가보자고 했고 저녁을 먹고 있던 저는 아무 의심 없이 그러자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이미 신천지였던 오빠가 저를 신천지로 전도하려고 준비한 계획의 첫 단계였습니다. 평소에 서로에게 관심이 없던 저희 남매였는데 오빠가 제가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찾아오는 등 유난을 떨었고 평소 궁금해 하지도 않던 저의 일상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또 제게 심부름만 시키던 사람이 떡볶이를 사주는 등 이상하게 행동했지만 전혀 의심하지 못했었습니다.


 


청춘 캠프라는 명목하에 신천지인들과 8-9명 되는 섭외자들이 함께 모인 모임이 2일간 진행 되었습니다. 오빠가 신천지인 것도, 그 사람들이 다 신천지 사람인 것도 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루 2시간씩 모였었고 함께 놀고 먹으며 신천지 용어로는 마음열기를 진행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2일 때 되는날 “모시기 힘든 분이다. 심리상담사다.”라며 이중 몇 명만 뽑아 심리 상담을 해 주겠다며 각자의 전화번호 및 이름을 써서 제출하라고 했고 몇일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뽑히겠어?’하는 마음으로 ‘내지말까?’ 하다가 제출했고 이튿날 정말 기적같이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신기하기도 했고 신이 나기도 해서 엄마와 오빠에게 자랑했습니다. 오빠는 너가 제일 어려서 나이 때문에 뽑힌 거라며 신이 났지만 이상해하는 제 의심을 없앴고 그렇게 몇 일간의 심리 상담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상담사는 제가 자존감이 낮고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다는 이유를 대면서 성경에 대해 배워보자고 했었습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저는 꿈을 꾸고 소리를 듣고 피곤하거나 하면 보이는 악한 영들에게 시달리던 중이었고 “말씀을 들으면 이겨낼 수 있을거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이 괴롭히지 않을 거다.”라는 말을 믿고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복음방 첫날엔 별탈 없이 진행되었지만 이튿날부터 교사님과 함께 복음방을 할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고 꿈에 나와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아, 내가 말씀을 배우지 못하게 사단이 막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한달, 두달 정도 지나 괴롭힘이 줄어들 때 쯤 교사님이 제 잎사귀였던 오빠와 함께 센터에서 더 많은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일주일에 4번이며 총 28주 과정이라는 말에 오빠에게 “안 가겠다. 싫다.”라고 하자 오빠는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도 오빠가 이상하다라는 의심은 전혀 없었고 오빠가 저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며칠만 들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센터에 나갔습니다. 센터에 하루 수업을 들은 뒤 ‘아 ..내가 이걸 안 들었으면 후회 했겠구나’ 싶어 6개월을 듣기로 결정했습니다. 초등 비유풀이를 배울 때는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다음엔 뭘 가르쳐 주실까?’하며 궁금해 했습니다.


 


중등이 끝날 무렵 여기가 신천지임을 밝혔고 약속의 목자가 대한민국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신천지가 이단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이단인지 몰랐던 저에게는 이곳이 신천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목자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역사하고 있다는 말에 감동받았던 저는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울고 놀라시는 등 여러 반응을 보이셨지만 다들 말씀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이내 곧 괜찮다고 하셨고 저 역시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기 사람들이 다 미친건가 싶기도 했지만 제 옆엔 이미 신천지 신도였던 오빠가 있었기에 크게 두렵진 않았습니다. 저는 고등까지 열심히 공부해 센터가 종강하던 날 춤도 췄습니다. 너무너무 신났고 신천지 입성이 코앞이었기에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 주 일요일 저는 멋지고 당당하게 신천지 교회에 입성했고 저의 신천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새신자답게 패기있게 열심히 노방도 했고 오전 9시에 일는 전성도 교육말씀도 빠지지 않고 들었습니다. 여름엔 더운대로, 겨울엔 추운대로 일했습니다. 혹시 내가 144,000에서 멀어질까 열심히 신천지 교리 공부도 했고 전도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친구들을 전도하려고 신앙카드도 쓰고 만남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의 친구 실패를 겪었고 상심해서 침체를 겪을 때쯤 엄마를 전도해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엄마의 신앙 카드를 신천지에 제출했습니다. 신천지 부녀회에선 어머니가 이단경계심이 높아 오빠와 제가 신천지인으로 들킬 위험이 있으니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 하셨고 엄마마저 실패인가 싶어 저는 더 힘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이외엔 가지 않았었고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겨울 이대로는 내가 영적으로 죽겠다 싶어 엄마전도를 다시 신천지 측에 밀어 붙였고, 여러 가지 모략과 많은 사람들의 기도속에서 이듬해 엄마의 복음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엄마께서는 말씀이 좋다고는 하셨지만 꾸준히 의심하셨고 덕분에 오빠와 제가 신천지에 다닌다는 것을 들켰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집은 전쟁터였고 둘중 누군가는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 시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엄마는 하던 일을 그만두시고 저희에게 신천지가 왜 잘못된 곳인지 말씀하셨지만 저희는 듣지 않았고 서로의 종교를 놓고 매일같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엄마는 매일 우셨고 저를 붙들고 신천지에 가지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이미 들킨 거 신천지에 나와서 더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눈물에 흔들이던 저는 내가 이렇게 흔들리다 신천지를 나가게 되면 엄마의 천국길도 제가 막을까 싶어 다시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끝없는 반증교육은 저를 더 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신천지에 안갔다면..’하는 생각도 많아졌고 후회도 했습니다. 교회 사람들에겐 괜찮은 척 했지만 괜찮지 않았고 가면을 쓰고 사람들에게 감정을 숨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절대 제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늘 피드백대로 행동하게 했습니다. ‘내가 신천지에 간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 진리는 핍박받는 법이다, 이 핍박을 이기면 하나님이 내게 주실 상이 크다, 하나님은 이길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 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상심하실까?’ 이런 생각들이 저를 덮었고 우울했던 날들이 더 우울해져갔습니다.


 


그러던 중 오빠가 연락이 안된다는 오빠의 구역장의 말을 들었고 원래 연락이 잘 안되던 사람이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2일 뒤 오빠가 신천지에서 말하는 강제개종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나도 곧 끌려가겠구나’ 싶었고 ‘언젠가 한번은 다녀와야 했으니 차라리 잘 됐다.’ 는 마음도 싶었습니다. 그후 신천지 사람들은 매일 같이 저희 집 앞에서 보초를 섰습니다.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은 어머니는 제게 더 쏘아 붙이셨고 가만히 있어도 힘든 저에게 신천지 사람들의 잠복과 감시는 고문이었습니다. 제가 원치 않았지만 신천지에서 내린 결정이니 따랐습니다. 오빠가 아빠 손에 이끌리어 상담받으러 가고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지만 엄마와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차라리 죽으면 편하겠다라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제 삶에서 제 스스로 선택한 것들이 별로 없었고 그 마저도 부모님이 반대를 하신 적도 있기에 어찌보면 신천지는 제 돌파구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었었고 누구의 반대라도 이기고 다니고 싶었습니다. 하루라도 마음이 편했던 날이 없었고 서로에게 더 상처를 주기 위해 칼을 날렸습니다.


 


너무 힘들었기에 오빠가 상담소에 간지 20일쯤 지났을 때 신천지로부터 제 마음이 점점 떠나는 것을 느꼈고 신천지에서 살기 위해 더 열심히 했어야했을 일들을 하나, 둘씩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신천지 때문에 포기했건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를 만나서 놀러다니는 일, 염색을하는 일, 짧은 옷을 입는 일 등 제가 하고 싶은 일 또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니 마음이 가벼워졌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한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했고 저를 찾아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며칠 뒤 아빠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상담을 15번만 들어봐라, 다 듣고도 신천지에 다니겠다 한다면 말리지 않겠다. 단, 그곳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난 후에 다른 이단에 또 빠지지 않게 교육을 들어주길 바란다”고 하셨고 저는 “가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대답을 하진 못했습니다. 혼자라서 무서웠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부산에 도착하고 저는 매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신천지로 인도 하셨듯 저의 가는 길 인도해주시고 붙들어 주세요. 또 신천지가 틀렸다면 말씀을 분별하게 하시고 맞다면 믿음을 지킬 수 있게 도와 주세요.” 시간날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기도했고 첫 상담을 받을 날이 될 때까지 일주일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미친 사람처럼 중얼중얼 기도만 했습니다.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첫 교육날 이기겠다는 생각보단 내 마음과 믿음을 지키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고 ‘신천지가 맞으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돌아서야지’ 하면서도 저는 저도 모르게 신천지 편에 서 있었습니다. 교육내내 저는 말씀을 분별하기위해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고 머리가 아프고 눈앞이 뿌옇게 보였지만 눈을 더 크게 뜨고 집중했습니다. 첫 상담이 끝이 나고 반증교육으로 들었던 신천지의 교육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천지가 틀리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작정 기도만 했고 두 번째, 세 번째 상담을 들었습니다. 신천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실상을 붙들고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으로 ‘제발, 제발!’ 하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그때 옆에서 같이 교육을 듣던 오빠는 회심했구나 싶었고 네 번째 시간, 책들을 비교하며 실상이 변했다 했지만 저는 신천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UN에서 이만희 씨가 연설했었다는 것도, 민다나오 평화협정도 모두 거짓이 었다는 것을 보고는 ‘아... 신천지가 아니구나. 내가 붙들고 있던 실상도 다 거짓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 교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로 여러 번의 교육을 들으면서 김남희씨와 이만희씨의 호화로운 생활에 대해 보고 듣고 회심을 결정했고 신천지가 틀렸음을 인정했습니다. 신천지 위에 그 몇 명을 위해 20만 가까이 되는 성도가 속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두고온 신천지의 친구들과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의 헌금을 이만희 씨와 김남희 씨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이용하는 것을 보니 다단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웠고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그들이 보상해주는 것도 아닌데 목숨걸고 신앙하는 사람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신천지 사람들에게 신천지가 틀리다는 것을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신천지에서 신앙하기 위해 제 또래 친구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포기했고 신천지인들은 늘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 때문에 항상 행동과 언행까지도 조심했습니다. 신천지에서 많은 교육을 들었던 저도 상담실의 상담만으로 올바른 길을 찾았고, 그 동안 잘못 배운 성경말씀을 고치고 바른 성경관으로 고쳐나갔습니다. 지금의 저는 신천지인이 아닌 신천지인들이 말하는 배도자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천지가 말하는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기에 그들은 제게 진리를 가르친 적이 없으니 제게 배도자라고 손가락질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신천지에서 피땀 흘려가며 일하는 그 성도들이 하루 빨리 회심되기를 바라며 기도할 예정입니다. 또 저는 이 자리를 통해 오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신천지로 데려간 일도, 다시 올바른 길을 택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고맙습니다. 오히려 이런 일을 함께 겪었기에 친하지 않았던 저희 남매가 더 친해진 기분도 들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마음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저희 가족은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고, 신뢰도 깨졌습니다.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고, 자식된 도리 로 부모님께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도움주신 가족들, 최집사님, 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상담소 분들, 부모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길고 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