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탈퇴 수기 (신천지 경험담)

신천지 탈퇴자 수기


<대구 다대오> 100% 진리라고 생각했던 신천지가 100%비진리라는 걸 깨달은 청년

마스터 0 1745

모태 신앙이었고 중, 고등학교를 일반 학교가 아닌 기독교 대학교를 졸업한 저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형식적인 신앙을 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을 하며 지내던 22살의 어느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저는 신앙에 대한 큰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출석하던 교회의 목사님은 설교 시간 대부분을 말씀에 대한 것보다는 읽었던 책에서 느끼고 깨달은, 삶의 교훈에 대한 것이었고 말씀에 대한 설교는 10분 남짓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당연시 되었지만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안되고 문체도 어려웠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그저 멀게만 느껴지고 추상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답답했습니다. 교회 설교와 말씀 프로그램, 수련회에서도 말씀의 갈급함을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한창 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전과를 생각하기도 했고 미래를 생각하며 편입을 생각하기도 했던, 고민이 없었던 22년 중 가장 큰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하루는 너무 답답한 나머지 대구 시내에 있는 한 공원에서 바람 쐴겸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20대 후반 쯤 되어보이는 여자 두 분이 다가와서 인도로 단기선교를 간다고 하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중학생 때 일본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경험이 있었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그 때 저는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독교인이라는 동질감을 느끼며 현재의 고민과 저의 개인정보를 모두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저의 고민은 진로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 여자분이 직업 컨설턴트라는 컨셉을 입고 차후 만남을 약속하였고 저와 이름까지 같은 그 분에게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번호를 주고 다음 날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당시 그 분들은 여러 장의 카드를 보여주며 요즘 교회의 이미지에 대해 물어보았고 저는 가면 쓴 그림을 고르며, 교회릐 부정적인 부분, 돈, 큰 교회의 비리 같은 것들을 말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벤치에서 있었던 20여분의 대화 내용을 부모님께 쭉 말씀드리며 어쩌면 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부푼 마음으로 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그 사람들이 이상하다며 무료로 해준다는 것이 수상하다고 사이비가 아니냐 만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 만나서 이상한데 빠지면 직장 다 내려놓고 딸을 찾으러 다닐 거라고 말씀 하셨고 저는 그 분에게 부모님께서 만나지 말라 하셔서 아무래도 못 나갈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지만, 그 분은 다른거 하지 않고 딱 적성검사만 할 거라는 말에 일단 알겠다고 하며 부모님 몰래 만나 적성검사를 했고 적성검사는 이미지 메이킹으로 이어졌으며 외적인 모습이 바뀌어도 결국 내적인 모습이 바뀌어야 한다며 내적 이미지 메이킹으로 복음방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어려웠던 말씀은 쉽고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기초부터 배워나갔고 말씀 배우는 것이 재밌고 선생님께도 감사해서 매일 5분, 10분 전에 도착해서 준비하며 선생님과 공부를 했습니다. 1달 정도 공부를 하고 현충로 역 남부센터로 가서 2개월 정도 공부했을 때, 어머니께서 제 다이어리에 적인 ‘금촛대’라는 단어를 보시고는 밤중에 가족이 모여 저번에 만나지 말라던 사람 만났느냐며 심문하셨고 신천지라며 절대 가지 말라 셨습니다. 그리고 핸드폰도 빼앗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방으로 가자마자 강사님께 부모님께서 다 알게 되셔서 더 이상 못갈 것 같다고 연락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주일이었는데 교회를 가서 주보만 챙기고 강사님을 만났고 이었던 이야기를 쭉 해드렸고 어머니께서 수첩에 어떤 번호까지 적어 놓으셨다고 말씀드리자 강사님은 개종교육에 끌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종교육은 가정을 파괴하는 곳이라며 가면 절대 안 된다고 앞으로 잘해야 한다며 나중을 위해 부모님 성함과 번호도 적었습니다.


 


이후 강사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며 동영상 강의를 통해 노트북으로 수업을 들었으며 개학하고난 후 기숙사를 다니며 안전하게 센터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유월을 하였고 저와 같은 말씀 교육과정을 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신기했고 이렇게 늦게라도 온 것이 감사했습니다. 처음 부모님이 저에게 다이어리를 보시고 가지 말라 신천지다 라고 했음에도 센터를 간 이유는 ⓵ 신천지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 ⓶ 초림 때의 상황과 정말 비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월 후 3개월을 예배만 왔다갔다 하며 모임과, 가끔 활동을 하였고 그 후에는 영대병원역 근처 대명 센터를 다니며 잎사귀를 했고 이 때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기수에 또 잎사귀를 하였고 팀장을 하지 않겠냐는 간사님의 말씀에 알겠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많이 배우고 신앙이 많이 자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팀장을 하며 지냈고 그다음 기수에 다시 또 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팀장을 하며 힘든 일도 있었지만 힘든 만큼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팀장을 할 때는 4학년 2학기 였기 때문에 아침 9시부터 밤 9시 까지, 학교가지 않는 날이면 하루 종일 센터에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센터에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다른 팀장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귀가 했고 가끔씩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면 어머니께서 데리러 나오셨는데 9월 7일에 껌 종이를 발견한 어머니께서는 데리러 와 달라는 저의 연락에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아웅 하는 저에게, 저를 모른 척 하시며 매번 화는 내셨지만 데리러 와주셨습니다.


 


그리고 12월 18일 시험이 끝나고 아버지 생신 겸 저녁을 먹는 다고해서 센터에 전도사님, 강사님, 팀장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저녁 일찍 귀가했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왔는데 갑자기 이모부와 이모가 오셨습니다. 그리고서는 온 가족이 저를 상담을 한 번 받는 것을 설득하셨습니다. 아무리 듣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려도 가족들은 완강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신천지에서 말하는 개종교육을 시작하였고 저는 절대로 신천지를 등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가출을 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동안 속타며 고생한 가족 생각에, 도망가면 정말 그건 부모님께 못할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부모님 마음에 대못을 박을 수 없어 일단 듣기로 했고, 그래도 제가 바뀌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들으면서 신천지의 교리가 얼마나 거짓되고 말이 안 되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100%라는 진리가 완전히 비진리라는 것이 말씀으로 반박되어지자 더 이상 신천지를 붙잡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단의 계보와 여러 가지 비리, 덕이 되지 못하는 이만희 씨의 행적에 지금까지 신천지에서 보낸 시간들이 아깝다 생각이 들었고 그 시간들의 배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상담을 들을 수 있도록 설득해준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상담해주신 상담소에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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